D-18 매드프라이드, 우리들의 미친세계

◀ D-18 ▶ 2019년 제1회 매드프라이드 SEOUL


1993년 캐나다에서 시작돼 영국, 프랑스,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에서 열린 ‘매드프라이드(Mad Pride)’가 오는 10월 26일 한국에서 처음으로 개최된다. 매드프라이드는 정신장애인들을 위한 행사로 ‘미친 자존심’ ‘미친 자부심’ 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서울 광화문 세종로공원에서 열리는 이날 행사는 ‘당사자들이 직접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취지에 공감하는 정신장애인과 이를 지지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이들이 ‘매드’라는 단어를 거침없이 사용하는 것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성소수자가 ‘퀴어’(Queer·괴상한)라는 단어의 의미를 재정의한 것처럼 매드라는 단어가 원래 가지고 있는 의미를 전복시키기 위함이다. 그래서 매드프라이드에서는 ‘Proud to be crazy(미친 것이 자랑스럽다)’, ‘Don’t mess with my brain(내 뇌를 건드리지 마라)’ 등이 쓰인 손팻말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한국에서 매드프라이드를 처음 기획·제안한 곳은 정신장애인 예술창작단체 ‘안티카’다. 심명진 안티카 대표(34)는 “지난해에는 한국에서 매드프라이드를 열고 싶다는 생각만 했지 기획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올해 초부터 조직위원회를 꾸려서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이들이 내건 슬로건은 ‘혐오를 넘어선 광기, 혐오를 녹이는 온기’다.

행사는 크게 공연과 퍼포먼스, 각종 홍보부스, 그리고 당사자들을 위한 휴식공간으로 꾸려진다. 대표적인 퍼포먼스는 매드프라이드의 상징으로 자리잡은 ‘침대 밀기’다. 참가자들은 화려하게 꾸민 병원 침대를 밀면서 거리를 행진할 예정이다. 이는 시설과 병원을 벗어나 지역사회로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심 대표는 “현재 침대 세 개를 확보했다”며 웃었다.


병원 침대 밀기, 대표적인 상징 행사


행진에는 2m50㎝ 높이의 ‘마르코 까발로(Marco Cavallo)’도 함께한다. 마르코 까발로는 이탈리아의 한 정신병원에서 장애인들이 만든 큰 ‘파란 목마’다. 원래는 병원 내에서 빨래를 싣고 다니는 용도로 사용됐으나 1980년 이탈리아의 모든 국립 정신병원이 폐쇄되면서 장애인들과 함께 병원 문을 나서 지금은 자유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조현병 당사자인 목우씨(43)는 이번 행사에서 연극을 할 예정이다. 연극 제목은 ‘하얀방’. 정신병원 폐쇄병동과 병원 내부의 안정실에서 당사자들이 겪는 일을 소재로 했다. 목우씨 역시 10년 동안 집과 병원을 오갔다. 열심히 병원에 다니면 언젠가는 ‘정상’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반복적이고 오랜 병원 생활은 고립으로 이어졌다. 약물 부작용으로 살도 30㎏ 가까이 쪘다.

그가 사회로 나온 건 2년 전이다. 당시 그는 정신장애인으로 등록하고 주변에도 이 사실을 알렸다. “처음에는 부끄러웠는데 이제는 어디를 가나 조현 당사자라고 말해요.” 목우씨가 담담하게 말했다. 숨기고 살 때보다 장애인으로 등록하고 정신장애 당사자 문학소모임 등에 참여하면서 자신의 경험이 정신장애인 대부분이 겪는 ‘공통의 문제’라는 걸 알게 됐다.

이 과정에서 그는 자신의 존재를 긍정하게 됐다고 말했다.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아버지를 생각하면 이런 경험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새삼 깨닫는다. 조현병을 앓고 있는 아버지는 항상 골방에 누워 있었고 어느 날은 칼로 스스로의 목을 찔렀다. ‘정신병자’라는 낙인을 안고 살아가는 게 힘겨워서다. 정신질환에 대한 이해라고 할 것도 없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그는 이번 매드프라이드 행사에 대한 기대가 크다. 그는 “기본적으로 다양한 소수자 운동의 흐름을 잇는 것이고, 지금까지 정신질환을 규정해온 편견에서 벗어나 새롭게 스스로를 규정하는 일종의 창조행위”라며 “이번 행사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존재를 긍정하고 해방감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소중한 행사”라고 말했다.

장창현 정신과 전문의(37)는 매드프라이드 참여는 물론이고 행사를 기획하고 준비하는 조직위원회 구성원이다. 정신보건법이 정신건강복지법으로 바뀌었지만 오히려 정신질환에 대한 혐오는 더 커진 현재 분위기 속에서 당사자 목소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해 참여하게 됐다. 그는 “당사자 운동이 더 나은 치료, 진료, 재활로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룹치료, 집단치료 못지않은 효과”

그의 지적대로 정신보건법은 2015년 정신건강복지법으로 전면 개정됐지만 현실은 바뀌지 않았다. 이에 장 전문의는 “개정된 법 자체는 입원치료는 신중하게 진행하면서 당사자들이 지역사회에서 좀 더 잘 살게 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의 변화는 더디다”며 “이런 상황에서 동력을 가지려면 힘이 있어야 하고 그 힘은 이웃들과 함께 살고 싶고 노동을 하고 싶다고 소리 내어 말하는 당사자들로부터 온다”고 말했다. 그는 당사자가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환경이 치료에도 도움이 된다고 본다. 약물을 비롯한 의료서비스는 정신질환자가 ‘좀 더 낫게’ 지낼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지 모든 걸 해주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그는 매드프라이드를 두고 “자신을 드러내고 또 그걸 괜찮다고 말해주는 연대의 장은 어떤 그룹치료, 집단치료 못지않게 큰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매드프라이드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이들도 있지만 어려움도 많았다. 장소 섭외와 예산이 대표적이다. 심 대표를 비롯한 이들은 매드프라이드 특성상 ‘광장’을 고집했다. 당사자들이 광장에 나와야 한다는 것, 그리고 대중들이 당사자를 직접 봐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심 대표는 “언론을 통해서가 아니라 직접 마주하면 왜곡된 시선이 어느 정도는 바뀌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하지만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심 대표는 “원래 서울시청 광장에서 하고 싶었는데 다양한 기관에서 좋아하지 않았다”며 “도움을 많이 요청했는데도 잘 안 됐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예산 역시 마찬가지다. 건물 내부에서 열리는 행사라면 돈을 지원하겠다는 곳은 여럿 있었지만 광장에서 열리는 행사라면 지원할 수 없다는 답을 받았다.

우여곡절 끝에 안티카가 최근 예산을 지원받게 돼 그 중 일부를 매드프라이드에 사용할 예정이지만, 여기까지의 과정 자체가 정신장애에 대한 우리 사회의 편견을 그대로 드러낸다. 심 대표는 “영리단체, 비영리단체는 자원봉사자를 모집할 수 있는데 우리는 정신장애인 단체라는 이유로 처음에는 허가가 안 나다가 최근에야 ‘성인 한정’으로 허가가 났다”고 말했다.

심 대표를 비롯한 장 전문의, 그리고 당사자 목우씨까지. 이들은 이렇게 어렵게 준비한 행사가 잘 치러져 한국에서도 연례행사로 자리잡기를 바란다고 입을 모았다. 심 대표는 “한국 국민 4명 중에 1명은 정신질환을 겪는다고 한다. 따라서 정신질환은 우리 모두의 문제”라며 “당사자들이 광장에서 목소리를 내는 첫 행사에 따뜻한 연대를 바란다”고 말했다.


기사: 중앙경향 이하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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